지금 바로 세바시 회원이 되세요. 당신부터 바뀝니다. 로그인 바로가기

내가 만났던 김창호 대장

[글 : 오현호 고아웃사이드 대표 ‘부시 파일럿, 나는 길이 없는 곳으로 간다‘ 저자] 

[에디터의 말 : 故 김창호 대장은 국내 최초로 무산소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베테랑 산악인이다. 2005년 7년 7월 낭가파르바트(8156m) 등정부터 2013년 5월 20일 에베레스트(8848m) 등정까지 히말라야 8천m급 14좌를 완등했다. 김창호 대장를 포함한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 5명이 히말라야 구르자히말산 등반 도중 사망했다. 오현호 강연자는 10년 전 김창호 대장과 함께 산을 올랐다. 그는 옆에서 본 김창호 대장을 누구보다 학술적으로 체력적으로 준비하고 안전에 완벽함을 보였던 진정한 도전자였다고 기억한다. 10년 전 김창호 대장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추모한다.]

히말라야 탐험가의 10년 전 

불과 몇 주 전 히말라야로 떠난다고 연락을 주고받던 그 해병대 선배, 나의 롤모델, 세계적 탐험가 김창호. 나는 그를 닮고 싶었다. 2009년 함께 히말라야 텐트 피크를 다녀올 때의 자료를 찾아보니 우연히 그와의 대화를 발견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운 좋게 김창호 대장과 함께 하는 텐트피크(봉우리 이름) 원정대에 합류할 수 있었고, 그렇게 산에서 두 도전자를 만났다. 김창호 대장과 그의 오랜 자일 파트너였던 서성호. 두 마리 호랑이 같았던 그 둘은 미친 체력은 물론이고, 침착하고, 늘 안전과 동료를 최우선으로 하는 배려심 깊은 모습에 나는 빠르게 반했다. 조용하면서 우직한 산 같은 모습을 닮고 싶었고, 텐트 안에서 한 마디라도 더 담으려 노력했다.

그들은 당시 엄청난 속도로 히말라야 8,000m급 고산들을 무산소로 등정하면서 화제가 되었지만 동시에 최소한의 인력과 장비를 사용하는 알파인 스타일을 고집하는 전형적인 탐험가들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어린 꼬꼬마에 불과했을 테지만 그 모든 장면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플라토 지대 | 사진 : 오현호)

정상 등정을 시도하는 날, 새벽부터 힘들게 오르고 해가 뜰 무렵 플라토 지대에 다 닿았을 때 김창호 대장님이 내게 말했다.


“현호, 그 카메라 가방 가져갈 건가?”

“네”

“들고 가지 마라. 그 무거운걸.”


카메라 가방에는 캠코더와 DSLR이 들어있어서 꽤 무게가 나갔지만, 체력에 자신이 있어서 다들 베이스캠프에 놓고 갈 때 고집을 피우며 들고 왔다.


“작가님도 하산했고, 저라도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아서요. 들고 가겠습니다.”

“놓고 가..“

‘...’

그렇게 자신 있어했던 내 모습도 히말라야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김창호 대장 눈에는 불안해 보였었나 보다. 실제로 플라토 지대에 올랐을 때 대원들 절반 이상이 심한 피로를 경험하고 있었고, 나 역시 꽤 지친 상태였다.  그 후 설원 지대를 지나 긴 설벽 구간과 이어지는 능선길은 끝없이 이어졌었고 내 체력도 함께 빠른 속도로 저하되었다. 오를수록 산소가 적어지며 내 몸은 마치 빨랫줄의 빨랫감처럼 힘없이 축 늘어지기 일쑤였다. 카메라는 분명 발걸음이 무거워진 내게 짐이 되었을 것이 불 보듯 뻔하고 주마링을 하고 피켈을 들면서 그 큰 카메라로 사진까지 찍으면서 풍광을 느낄 여유는 찾기 힘들었다. 그의 선택이 옳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라웠다. 하이캠프부터 계속 운행을 같이했었던 것도 아니고, 단지 플라토에서 잠깐 만났을 뿐인데. 그렇게 안전과 동료를 최우선 하는 탐험가는 드물다.

(정상 직전에서 | 사진 : 오현호)


달에 처음 착륙한 닐 암스트롱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발이 한 번도 닿지 않은 파키스탄 바투라 2봉(7762m), 네팔 힘중(7140m) 등을 세계 최초로 정상을 밟은 ‘김창호’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 그가 세계 최초로 오른 산만 3곳이고 8개의 새 루트를 개척했다.

더 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했으면 한다. 그는 스스로 미지의 세계를 향해 파키스탄 지역을 홀로 다니며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도전했다. 그가 그렇게 대한민국을 알리던 마지막 ‘코리안 웨이’는 완성되지 못했다. 하지만 전 세계는 기억한다. 대한민국에도 이러한 등반가가 있었다는 것을. 무식할 정도로 산소가 필요하지 않은 강인한 사내를. 10년 전 그가 내게 한 말을 기억한다.

'가장 힘들었던 게 가장 행복했다.'

'너무 쉽게 얻은 것은 빨리 증발한다.'

'육체적인 것을 경시하지 마라.'

'몸으로 배운 것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현호 잘했어 역시.'




(정상에서 | 사진 : 오현호)


2018년 10월 15일 김창호 선배를 추모하며.





오현호의 도전의 숲 칼럼

1편 : 지금 이 순간 학생들은 자퇴를 꿈꾼다 : https://sebasi.co.kr/journal/250

2편 :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면 알게 되는 것들 : https://sebasi.co.kr/journal/267


지금 바로 세바시 회원이 되세요. 당신부터 바뀝니다. 로그인 바로가기
#동기부여 #오현호 #도전

세바시

댓글 (0)

댓글등록
등록

추천저널

  • 단점을 없애면 그 빈 공간에 새로운 장점이 생긴다

    세바시
  •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면 알게 되는 것들

    세바시
  • 지금 이 순간 학생들은 자퇴를 꿈꾼다

    세바시
  • 느리게 살아도 괜찮다

    세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