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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 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 쪽에 있을지도 모른다

[글 : 이철환(소설가. ‘연탄길 1,2,3’,‘마음으로 바라보기’,‘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저자)]

오래전 일입니다. 곽재구 시인께 감사 메일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그의 글을 읽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때마침 인도 여행 중이었습니다. 시인은 인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몇 편의 글로 써 답 메일로 보내주었습니다. 그 이야기 일부를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인도에도 우리나라와 같은 벼룩시장이 있는 모양입니다. 벼룩시장을 돌아다니던 시인의 눈에 주섬주섬 보따리를 푸는 한 소녀가 들어왔습니다. 아홉 살이나 열 살쯤으로 보이는 소녀가 보따리에서 꺼낸 것은 놀랍게도 종이배였습니다. 여러 색의 종이배엔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소녀는 자신이 만든 종이배를 팔려고 벼룩시장으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시인이 보낸 글을 읽으며 인도에는 종이배를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시인은 떨리는 손으로 종이배 두 개를 고른 뒤 값을 물었다지요. 종이배 값이 얼마였을까요? 10루피였다고 합니다. 10 루피면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돈이라 했으니, 종이배 값이 제법 비싸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종이배 사는 모습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인도에서도 종이배를 사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겠지요. 따뜻한 감성을 지닌 곽재구 시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시인은 망설임 없이 종이배 몇 개를 샀습니다. 시인의 마음은 짠했을 것입니다. 벼룩시장에 서서 종이배를 팔아야 하는 아이는 가난한 집 아이 었을 테니까요. 이 이야기는 곽재구 시인의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을 읽어보시면 더 깊은 감동을 얻을 것입니다. 

짐작컨대 시인은 종이배를 사고 나서도 멀찍이 서서 종이배를 파는 여자아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아이에게 다가가 종이배를 사주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면서 말입니다. 종이배를 사간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그곳이 인도라고 해도 종이배를 사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종이배를 산 사람은 시인 한 명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따뜻하지 않으니까요. 


만일 누군가 다가와 종이배를 사는 시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저의 가정입니다.

“만일 당신이 사준 종이배 몇 개 때문에 저 아이가 종이배도 팔리는 물건이라고 착각하면 어떻게 하실 거죠? 당신 같은 손님이 올 가능성은 거의 없을 텐데, 아이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종이배를 가지고 벼룩시장으로 나와 생고생을 한다면 어떻게 하실 거죠? 당신이 사준 종이배 몇 개가 저 아이에게 희망이 되어, 저 아이가 밤늦게까지 혹은 앞으로도 며칠 동안 거리에 서서 종이배가 팔리기를 기대하며 헛수고를 한다면 당신이 책임지실 수 있나요? 아이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차라리 아이에게 솔직히 말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종이배를 사는 사람은 없다고, 세상에 너희들이 만든 종이배를 사가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고 솔직히 말해주어야 합니다. 종이배 같은 건 팔리지 않으니까 차라리 너희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 중에 싫증이 나서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가지고 나오라고, 너희들이 읽은 책들 중에 더 이상 필요 없는 책을 가지고 나오는 게 훨씬 낫다고, 아이에게 솔직히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헛수고를 하지 않을 테니까요. 세상엔 감성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따로 있고 이성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따로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종이배를 사준 시인에게 다가온 사람의 확신에 찬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는 것이 아이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돈이 필요한 아이라면 더욱 그렇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는 중요한 것 하나를 놓쳤는지도 모릅니다. 종이배 같은 건 팔리지 않는다고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여자아이는 그 사실을 곧 알게 됩니다. 비록 고생은 하겠지만 밤늦게까지 혹은 며칠 동안 종이배를 팔아보면 종이배가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는 저절로 알게 됩니다. 아이는 쓸쓸한 마음으로 팔지 못한 종이배를 보따리에 담아 집으로 돌아가겠지요. 그렇게 스스로 깨닫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깨닫는 것이 진짜 깨달음이니까요. 

출처 : 위키미디어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들은 또 다른 깨달음으로 위로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종이배를 팔았던 여자아이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자신에게 다가와 종이배를 사준 눈빛 선한 이방인 아저씨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 아저씨는 아무도 사지 않는 종이배를 왜 샀을까, 여자아이는 생각하겠지요. 아저씨가 자신들에게 다가와 종이배를 사간 이유가 바로 ‘사랑’이었음을 아이는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종이배를 팔러 나온 어린 여자아이의 가슴속에 ‘긍정의 빛’ 한 줄기를 심어준 것입니다. 세상엔 오직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향해 다가오는 마음씨 착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은 가난한 아이에게 ‘희망의 빛’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종이배 하나로 파도치는 세상을 살아가야 할 그 아이에게 심어주어야 할 믿음이 아닐까요. 장난감이나 책 몇 권과 바꿀 수 있는 몇 푼의 돈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시인 아저씨가 여자아이에게 주었던 작은 사랑은 바다보다 험난한 삶을 해치고 나아가야 할 인도의 아이에게 두고두고 ‘희망의 빛’이 되어줄 것입니다. 아이에게 산 종이배는 지금도 시인의 작업실에 있을 것 같습니다. 커다란 파도를 해치며 세상을 항해 중일 어린 여자에 대한 기억을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한 채 말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 쪽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철환 작가의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1편 : 손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게의 비밀 https://sebasi.co.kr/journal/199

2편 : 내 삶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나인가, 당신인가? https://sebasi.co.kr/journal/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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