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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게의 비밀

내가 사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칼국숫집이 새로 생겼습니다. 깔끔한 실내외 인테리어는 주변의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었고 주차 공간도 넓었습니다. 칼국수의 양도 넉넉했고 맛도 좋았습니다. 주인은 언제나 환한 얼굴로 손님들을 맞았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종업원들도 주인만큼이나 상냥했습니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아 주문한 음식도 빨리 나왔습니다. 어떤 날은 모든 손님에게 음료수를 서비스로 주기도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손님들은 많아졌고 종업원 수도 많아졌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더는 손님을 받을 수 없을 만큼 손님들이 넘쳐났습니다. 대기 번호표를 받고 밖에서 10분이나 20분 정도 기다려야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손님들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어느 날 그 집에 다시 갔을 때 이전보다 예민해진 주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상냥했던 종업원들의 얼굴도 피곤함에 절어 있었습니다.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짜증 내는 손님들도 있었고,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커피 한 잔 편히 마실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는 손님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서비스로 주던 음료수도 주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은 줄었습니다.

그곳과 조금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칼국숫집이 생겼습니다. 먼저 생긴 칼국수 집 못지않은 규모와 인테리어를 갖춘 집이었습니다. 처음엔 손님들이 꽤 보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큰 폭으로 손님들은 줄었습니다. 뒤늦게 '개업기념 반값 할인'이라고 써놓은 광고지를 유리창마다 큼지막하게 붙여 놓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집에 직접 가보지 않은 터라 무엇이 문제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음식 맛이 문제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친절한 음식점보다 맛있는 음식점을 사람들은 더 좋아합니다.

그곳과는 한참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칼국숫집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20년의 전통을 가진 집이었지만 간판 어느 곳에도 '원조'라든가, '20년의 전통'이라는 말은 씌어있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말한 칼국수 집들과는 달리 메뉴도 칼국수 하나뿐이었습니다. 시설은 허름했지만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였습니다. 주인이나 종업원의 모습 속엔 과장된 친절이 없었습니다. 손님들을 대하는 그들의 얼굴은 늘 담담하고 평화로웠으며 음식을 나르는 동작도 느릿느릿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절대로 이 집에 오면 안 된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손님들이 있을 만큼 음식도 느리게 나왔지만 빨리 달라고 불평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손님이 많은 날엔 대기 번호표를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을 땐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음식점 밖 어디에도 커피 마실 공간은 없는데도 말입니다. 손님들은 끼니때와 상관없이 많았습니다. 끼니때를 일부러 피해 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손님이 많은데도 일요일이나 공휴일이면 영업을 하지 않았고 저녁 8시면 영업을 끝냈습니다. 이 집 주인을 볼 때마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프랑스 제빵사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빵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다는 제빵사의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공감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이 칼국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맛과 서비스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프랑스 제빵사와 비슷한 주인의 철학에서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이 집엔 다른 집과 분명히 다른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 집의 방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손님의 신발 분실 시 저희가 책임집니다. 손님은 안심하고 맛있게 식사하세요.>


근사한 말 아닌가요? 신발까지 살피면서 밥 먹으면 밥맛이 제대로 나겠습니까? 그런데도 거의 모든 음식점엔 <신발 분실 시 절대로 책임지지 않습니다.>라고 써 붙여놓았습니다. 물론 이 한 마디가 손님의 많고 적음을 결정하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한 마디 속에 담겨 있는 음식점 주인의 철학이 느껴지시는지요?



형식적인 배려와 친절로는 사람들을 감동을 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과장 되지 않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 우리는 진심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세상 최고의 반전은 인간의 변덕스러움이고, 변덕스러움은 인간의 본성과도 같은 것입니다. 비유는 단지 인간이 만들었을 뿐, 호랑이는 호랑이의 모습으로 여우는 여우의 모습으로 양은 양의 모습으로 살아갈 뿐이지요.

우리가 누군가의 말에 의해 설득되었다면 그것은 그의 말 속에 진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행동에 감동했다면 그것 또한 그의 행동 속에 진심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진심은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자신의 행보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진심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담담히 자신을 보여줄 뿐 소리 내어 자신을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진심은 우리가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수 없지만, 감추고 싶다고 해서 감출 수도 없는 것이겠지요. 진심은 말하지 않아도 이 모습 저 모습으로 반드시 전해질 테니까요. 


[글:이철환 | 소설가, ‘연탄길1,2,3’,‘마음으로 바라보기’,‘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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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이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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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최진원

2018-06-26 11: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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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알기부터 참 어렵네요.ㅎ
답글 0

이기영

2018-07-02 12: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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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입니다 현실은 치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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