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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정생활 – 내 속의 ‘분노’와 대화하는 법

 상담을 하다보면, 상대에 대한 배신감과 그로 인한 자괴감, 복수하고 싶은 마음, 치밀어 오르는 분노 때문에 심장통이 느껴질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분노하는 마음을 그대로 방치하면, 육체의 질병으로 옮겨가기 쉽습니다. 마음의 상처로 인한 스트레스가 폐렴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어요. 

 오래 전에 저도 비슷한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또는 ‘그녀’로 인해서 회복이 불가능한 것들을 잃었고, 배신감에 치를 떨었죠. 키 161㎝, 52㎏이었던 저는 4개월 만에 43㎏이 되었고, 밤에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30분마다 잠에서 깼어요. 몸이 급격히 쇠약해지자, 저 스스로를 비난하기 시작했죠. 

 ‘바보 같은 너는 먹을 자격도 없어.’ 일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어떻게 복수할까’와 ‘스스로 비난하기’에 썼습니다. 열심히 종교에 매달렸어요. 주기도문을 외우다가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에 이르면 목소리가 안 나왔어요. ‘저는 용서 못해요. 그러니 신께서도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기도하기를 포기했죠. 차라리 말을 말지, 용서하라고, 잊으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로 인해 더 상처 받았어요. 

 분노하기-원망하기-자책하기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죠. 수면제 없이는 한 시간도 잠들지 못했고, 생활은 피폐해졌습니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마르고 어두운 표정의 낯선 여자가 서 있었죠. 행운이 찾아왔다가도 잠시도 머물고 싶지 않아서 떠나 버릴 것 같은!


 “분노하며 원한을 품는 것은, 내가 독을 마시고, 상대가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미국 작가 말라키 맥코트가 한 말입니다. ‘그’또는 ‘그녀’는 저의 존재조차 잊은 듯 잘 살고 있는데, 저는 스스로 독약을 원샷하고, 상대가 망하거나 죽기를 바라고 있었던 거죠. 과거의 지옥에 갇혀서 저승사자 꼴을 하고 있는 건 바로 저였어요. 나를 배신한 사람의 불행을 바라며 내 시간과 감정을 쏟은 건, 복수가 아니라 나를 죽이는 것이었어요.

 분노는 우리를 과거에 덫에 갇히게 합니다. 해결할 수 없는 상대에 대한 분노는 자신에 대한 분노로 옮겨와서 자존감을 파괴하고, 현재에 대한 판단력을 마비시킵니다. 대인관계 공포증도 생기죠.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미래의 문은 열 수조차 없습니다. 그렇다면 분노는 무조건 참아야 할까요? 

 분노를 참는 건 고통을 더 증폭시킵니다. 깨어있을 땐 호흡곤란, 혈압상승, 심장 박동수 증가, 육체적 고통을 일으키고, 겨우 잠들면 램수면 상태에서 악몽에 시달리느라 근육도 쉬지 못해서 근육통이 생깁니다.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고 우울이 심해지면 자아기능이 급격히 낮아져서 실수를 연발하고,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킵니다. 집중력, 판단 능력, 감정 조절 능력, 미래예측 능력도 급격히 떨어집니다.

 상대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면,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고통과 분노의 감정을 거부하지 말고 당연히 일어나는 감정이라고 인정하세요. 분노는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상대가 가까운 관계였다면(특히 가족이라면) 고통은 크고 오래 갑니다. 관계의 죽음도 죽음입니다. 애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않고 관계를 정리할 수는 없어요. 단, 자기 비난은 금물입니다. 분노를 없애려는 무모한 노력을 포기하고, 그 분노를 자연스런 감정으로 받아들이세요. 

 하지만, 이미 다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분노를 ‘행동’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분노가 행동이 되는 순간,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내 인생에 더 큰 상처를 낼지도 모릅니다. 분노는 상대를 죽이는 게 아니라, 나를 죽입니다. 나를 고통에 빠트린 상대로 인해서 나는 더 많은 것, 아니 내 전부를 잃을 수도 있죠. 상대가 오늘을 살며 미래의 문을 열고 있을 때, 나는 과거의 방에 갇혀서 산다면, 얼마나 억울한가요? 그렇다면,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분노의 감정을 거부하지 말고 당연히 일어나는 감정이라고 인정하세요.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분노’의 감정을 가만히 바라보세요. ‘무의식’의 감정을, ‘의식’의 영역으로 가만히 끌어와서 침착하게 대화를 한 번 해 봅시다. 


우선 종이에 적어 보세요. 나의 솔직한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글씨로 적힌 내 감정을,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①나는 왜 분노하는가? 
②나는 그에게 어떻게 하고 싶은가? 복수하고 싶은가? 복수하고 싶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가? 
③그것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④그 결과로 인해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⑤그 결과로 인해 내가 잃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가요? 내가 분노하는 이유를 종이에 적어보면, 분노해야할 이유보다 더 심하게 분노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경우도 많아요. 분노를 행동으로 옮겼을 경우에, 내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지는 않나요? 저는 자주 이 방법을 써요. 제 감정을 객관화해서 바라볼 때,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분노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내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그러면, 나를 위해서,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멈출 수 있었고, 분노의 감정도 서서히 잠재울 수 있었어요. 나의 ‘의식’이 ‘무의식’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 단계에 이르면, 다음 두 가지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세요. 

①그는 나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②그는 나에게 어떤 감정일까? 

 처음 상대로 인해 상처받고 분노가 극에 달해 있을 때는 상대에 대해 생각하기도 싫고, 생각하면 더 분노가 치밀어 오르죠. 하지만 어느정도 내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 사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조금의 원인 제공을 했을 수도 있고, 그 사람 또한 나에게 상처받은 일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그런 행동을 했을 수도 있고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이젠 가장 현명한 복수를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내 인생의 하찮은 존재로 잊어버리는 연습을 해 보세요.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다는 건, 그를 내 기억 속에서 죽이는 것입니다. 당신 인생에서 가치 없는 인간을 기억의 쓰레기통에 쳐 넣고 불태워 없애는 것,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복수입니다. 내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 질 때, 용서는 서서히 이루어집니다. 억지로 분노를 참고 용서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진짜 복수는 신의 영역이고, 신이 대신 해 주는 날이 옵니다. 신의 시계는 우리가 원할 때 움직이지 않고 늦게 움직일 뿐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분노를 억지로 잠재우려 하지 말고, 내 감정을 인정하고, 이런 질문을 스스로 주고받는 과정을 거쳐보세요. 나를 위해서 상대를 용서하는 단계에 서서히 도달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죠. ‘용서’의 수혜자는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걸. 과거의 고통에서 스스로 벗어날 때, 오늘을 살면서 미래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글 : 박상미 경찰대학교 교양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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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박상미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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